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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8일 목요일

[요약정리] 권홍우. (2018). "사람의 동일성, 기억 이론,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발표: 학술지 『철학적 분석』



1. 도입
기억 이론
-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철학적 논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이다.
- 과거의 어떤 사람을 지금의 나와 동일인이게 하는 것은 기억의 연속성이다. 영혼의 동일성이나 육체의 동일성이 아니다.
 
기억 이론의 직관적 호소력
- 뇌 수술 사례: 당신의 뇌에 있는 치명적인 종양 때문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자. 수술을 받지 않으면 당신은 죽는다. 가능한 수술은 두 가지가 있다.
- 종양 제거 수술: 당신의 뇌의 종양을 제거한다. 이 경우 뇌(신체)는 유지되는 대신 당신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 기억 이식 수술: 당신의 기억을 다른 사람의 뇌(신체)에 이식한다. 이 경우 뇌(신체)는 바뀌는 대신 기억은 완벽하게 유지된다.
- 이같은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 마인드 업로딩 사례: 어떤 사람들은 미래에는 사람의 기억을 인공지능체에 업로드하여 그 사람이 '영생'을 누리게 할 수 있게 될거라고 믿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기술이 가능할지를 의심할지언정, 그것이 '영생'을 누리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억 이론의 딜레마: 복제 문제(duplication problem)
- 마인드 업로딩 사례에서, 하나의 인공지능체가 아닌 여러 인공지능체들에 당신의 기억을 업로드한다면, 그 인공지능체들은 모두 동일인이 된다. 그러나 그 인공지능체들 간의 상호작용은 타인들 간의 상호작용에 가까워 보인다.
 
[기억 이론 옹호자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대응들이 가능해 보인다. 여러 인공지능체들에 마인드 업로딩이 된 바로 그 순간부터 그 인공지능체들 각각은 서로 다른 기억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각 인공지능체들은 서로 매우 유사할 뿐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사람의 동일성 관계는 인공지능체들 간에 성립할 필요가 없다. 원래의 사람과 각각의 인공지능체들 간에만 성립하면 된다. , 사람의 동일성 관계는 이행적이지 않다. 현재의 나와 인공지능체 1이 동일하고, 현재의 나와 인공지능체 2가 동일하다고 해서, 인공지능체 12가 동일하다고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의 동일성 관계는 가능세계이론에서 말하는 통세계적 동일성 관계와 유사하다. 나는 이렇게 될 수도 있었고 저렇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러한 반사실적 나 1과 반사실적 나 2 사이에는 통세계적 동일성이 성립한다. 인공지능체들 간에 성립하는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
- 기억 이론의 직관적 호소력 부정: 철학에서 직관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기억 이론이 직관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 반론: 사람의 동일성 문제에서 직관은 특수한 위상을 갖는다. 사람의 동일성 문제는 '생존'에 대해 우리 자신이 중요시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 기억 이론이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관한 이론임을 부정: 기억 이론은 동일성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그와 혼동되기 쉬운 어떤 다른 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따라서 기억 이론을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설명으로 제시하는 것은 잘못됐다.
- 파핏(Derek Parfit), 벨만(David Velleman) 등이 제시한 입장이며, 저자도 동의한다.
- 그러나 동일성 관계와 혼동되기 쉬운 바로 그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해명되지 않았다. 저자는 이 논문에서 이 관계가 '자기 동일화'(self-identification)라는 심리적 관계라는 입장을 발전시킨다.
 
 
 
2. 사람의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의 기억 이론의 문제점
기억 이론의 핵심 주장: SX가 했던 일들, 경험했던 바 등등을 기억할 경우 오직 그 경우에 SX와 동일인이다.
- 주의점: 위의 주장에서 경험은 '내부로부터' 또는 '일인칭적인 관점'에서의 기억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국한되어야 한다.
- 이와 같은 견해의 직관적 호소력은 상당히 강하다.
-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례들이 있다.
- 반례 1: 아주 어릴 때 경험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음
- 반례 2: 술이 취해서 필름이 끊겼을 경우
 
수정된 기억 이론: 기억의 간접적 연결도 포함시킨다. : 현재의 나는 5살 때의 나를 기억하고, 5살 때의 나는 3살 때의 나를 기억한다. 따라서 3살 때의 나는 현재의 나와 동일인이다.
- 문제점 1: 기억 외의 어떤 외적인 요소를 인정하기 때문에, 기억 이론의 직관적 호소력을 약화시킨다.
- 문제점 2 (반례): 사람의 수명이 아주 길어져서 예를 들어 1000년을 살 경우, 1000살의 나와 3살의 나 사이에 기억의 연속성을 통한 간접적 연결이 있다고 해도 1000살의 나와 3살의 나를 동일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억이 흐릿해지면 동일성도 약화된다고 보는 것이 직관적이다.
- 문제점 3: 복제 문제(기존 기억 이론과 수정된 기억 이론에 모두 적용)
- 복제 문제에 대응해 수정된 기억 이론: '경쟁자 없음' 규칙을 추가하여, 기억의 연속성을 가진 대상이 둘 이상이면 안 된다는 단서 조항을 추가한다.
- 문제점: 기억의 연속성과 무관한 외적인 요소를 인정하기 때문에, 기억 이론의 직관적 호소력을 약화시킨다.
[또 다른 문제점: 처음에는 복제자를 하나 만들었다가 나중에 하나 더 늘리면, 동일인이었다가 동일인이 아니게 된다. - 존 페리,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관한 대화]
 
기억의 이론의 일반적 문제
- 동일성 관계는 재귀적, 대칭적, 이행적이지만 기억의 연속성이 이런 성질을 만족시킨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기억의 연속성을 통해 이런 성질을 만족시키는 동일성 관계를 정의해낸다면 직관적 호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따라서 사람의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서 기억 이론은 부적절하다.
- 그럼에도 기억 이론이 직관적인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기억의 연속성이 동일성과 혼동하기 쉬운 자기-동일화 관계를 지지해주기 때문이다.
 
 
 
 
 
 
3. 일인칭적 믿음과 '자기-동일화'
일인칭적 믿음(지표적 믿음, 데 세 믿음, 자신을 위치지우는 믿음)
- ''라는 단어를 포함하는 문장을 통해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
- 믿음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 믿음은 주체가 믿음의 대상(명제적 내용)에 대해 갖는 태도로 이해된다.
- 믿음의 명제적 내용은 진리치(/거짓)의 담지자로서, 공유되고 소통될 수 있다.
- 그러나 일인칭적 믿음은 위의 특징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일인칭적 믿음에는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 : 철수가 '나는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고 할 때와 영희가 철수에게 '너는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라고 할 때, 두 사람은 동일한 명제적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믿음에는 큰 차이가 있다. 철수만이 강도에게 쫓기고 있는 그 사람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 두 사람의 믿음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두 사람이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는 점에서도 나타난다. 따라서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요소는 실재하며, 모종의 기능적 역할을 한다.
- 결론적으로, 일인칭적 믿음은 다음과 같은 두 요소로 분리될 수 있다.
(i) 명제적 요소: SXF라고 믿는다. '나는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에서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이 S, ''X, '강도에게 쫓기고 있다'F
(ii) 자기-동일화 관계: S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자기-동일화 = 일인칭적 믿음 - 명제적 내용
- 명제적 요소는 다른 사람과 공유 가능하다.
 
자기-동일화 관계가 가진 몇 가지 특징들
- SX가 실제로 동일인임은 S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위한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다.
e. g. 유리 창에 비친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 표정이 왜 저래?'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유리 창에 비친 사람이 자기 자신인 경우. 동일인이지만 자기-동일화를 하지 않은 경우이므로, 동일인임이 자기-동일화의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e. g. 2. 유리 창에 비친 사람을 보면서 '내 표정이 왜 이래?'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유리 창에 비친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경우. 동일인이 아니지만 자기-동일화를 한 경우이므로, 동일인임이 자기-동일화의 필요조건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 자기-동일화 관계는 내포적(intensional) 관계이다. X=Y이고, SX를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고 해서 SY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는 보장이 없다. , 내포성은 자기-동일화 관계만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심리적 관계 또는 지향적 관계의 일반적인 특성이다.
 
 
4. 자기-동일화와 형이상학적 동일성
기억 이론은 형이상학적 동일성과 자기-동일화를 혼동하고 있다.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해 말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자기-동일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 형이상학적 동일성은 형이상학적 문제지만, 자기-동일화는 심리적 태도의 문제이다.
- 위에서 나왔듯이, 형이상학적 동일성은 자기-동일화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다.
- 자기-동일화는 'X는 나 자신이다'라는 명제적 믿음과도 구분된다. 이 명제적 믿음은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나 자기-동일화는, 위에서 언급했듯 일인칭적 믿음에서 명제적이지 않은 내용을 말한다. [S'X는 나 자신이다'라는 명제적 믿음을 가진다고 해서, SX로서의 일인칭적 경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동일화는 후자와 관련된다.]
 
기억 이론을 자기-동일화에 대한 이론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귀결들
- 기억 이론을 동일성에 대한 이론으로 받아들였을 때 여러 문제들이 발생했던 이유가 설명된다.
- 기억의 연속성 관계는 동일성 관계가 갖는 기본적인 형식적 특성들(재귀성, 대칭성, 이해성)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기억의 연속성 관계는 자기-동일화 관계이며, 자기-동일화 관계는 이런 특성들을 만족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 복제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미래의 복제된 인공지능체들 각자가 현재의 나에 대해 자기-동일화를 하기 때문이다.
- 기억 이론에서 일인칭으로 묻는 질문과 삼인칭으로 묻는 질문에 대한 직관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물음은 일인칭적 관점뿐만 아니라 삼인칭적 관점에서도 물을 수 있고 동일한 방식으로 답해져야 한다.
e.g. 철수의 '내가 그 5세 어린이와 동일인인가?'라는 질문과 영희가 철수에게 던지는 '네가 그 5세 어린이와 동일인인가?'라는 질문은 정확히 같은 질문이다.
- 자기-동일화에 대한 질문은 일인칭적 관점에서만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며, 이에 대응하는 삼인칭적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5. 기억 이론과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
기억 이론의 핵심적인 직관은 기억에 대한 판단이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이하 오류 면역성)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온다.
- 오류 면역성: 내가 생생한 기억에 의거해 나 자신에 대해 판단을 했는데,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 대한 것인지 묻는 것은 부조리하다(nonsensical).
e. g. 나는 어젯밤에 양치질을 했던 생생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내가 '어젯밤에 양치질을 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나?'라고 묻는 것은 부조리하다(nonsensical).
e. g. 2. '나는 이빨에 고통을 느꼈다. 그런데 이빨에 고통을 느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나?'. 이런 질문은 부조리하다.
- 얼핏 보기에 오류 면역성은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을 강하게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기억에 근거해 어떤 것을 경험했다고 판단을 했을 때, 그 경험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 오류 면역성은 일인칭적 판단(''를 포함하는 문장으로 표현되는 판단)에서만 볼 수 있다.
- , ''를 포함하는 판단이라고 해서 항상 이런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e. g.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 것 같을 때, '누군가의 이름이 불리었는데 그것이 나의 이름인가?'라고 묻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 내가 나 자신의 마음 상태나 신체 상태에 대해서 내성이나 기억에 기초해서 판단을 내릴 경우 오직 그 경우에만 오류 면역성이 나타난다.
 
내성이나 기억을 통한 믿음에서 오류 면역성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한 표준적 견해: 그러한 방법들에 특수한 인식론적 지위가 있다.
- 어떤 철학자들은 내성적 방법으로 도달한 판단에서는 다른 오류는 발생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을 나로 오인해서 발생하는 오류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 어떤 철학자들은 오인으로 인해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도 내성적 방법의 인식적 지위 때문에 그런 의심을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므로 오류 면역성이 발생한다고 본다.
- 오류 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설명이 옳다면 형이상학적 동일성에 대한 기억 이론이 자연스럽게 시사된다. 다음과 같은 논증으로 나타낼 수 있다.
(1)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은 오인으로 인한 오류에 면역을 가지고 있다.
(2) 따라서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은 나 자신에 대한 것임이 틀림없다.
(3) 따라서 기억의 연속성은 동일성의 기준이 된다.
 
 
 
6. '오류 면역성'과 자기-동일화
오류 면역성에 대한 표준적 견해는 옳지 않다. 표준적 견해는 내성이나 기억을 통해 도달한 판단에 대한 의심이 왜 부조리하게 들리는지 설명해야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례가 있다.
- 아직은 불가능하지만, 신경 체계에 조작을 가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내성적 방법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을 나로 오인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경우 '그런 경험을 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나?'라고 묻는 것이 부조리하지 않게 된다.
- 표준적 견해의 옹호자들 중 일부는 내성적 방법에 의한 판단이 나의 것인지 의심하는 것은 인식적으로 불합리하다고 [따라서 부조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식의 인식적 불합리성이 부조리함을 일으킬 수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류 면역성에 대한 대안적 설명 [권홍우 (2017) "'오인으로 인한 오류 면역성'의 교훈", 철학사상 64, pp. 129-155.]
- 표준적 설명은 오류 면역성이 일인칭적 믿음의 명제적 내용과 관련되는 것으로 본다.
- 그러나 저자는 오류 면역성이 자기-동일화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 저자는 자기-동일화의 관계와 믿음을 획득하는 내성적 방법 사이에 구성적(constitutive)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 S가 내성적 방법에 의해 'XF이다'라는 믿음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SX에 대해 자기-동일화를 한다는 것과 같다. 이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할 수 있다.
내성에 대한 구성적 견해: 필연적으로, S가 내성에 의해서 <XF이다>라는 판단을 내릴 경우, SF인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 이를 받아들이면 내성에 의한 판단에 대해 '그런 경험을 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였나?'라고 묻는 것이 부조리한 이유가 설명된다. 내성에 의해 그런 판단에 도달했다는 것 자체가 SX에 대해 자기-동일화를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 내성에 의한 판단의 오류 면역성과 내적 기억에 근거한 판단의 오류 면역성은 동일한 현상이거나 적어도 긴밀히 연관된 현상이다. 따라서 기억에 근거한 판단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구성적 관계를 정식화할 수 있다.
내적 기억에 대한 구성적 견해: 필연적으로, S가 내적 기억에 근거해서 <X(과거 어느 시점에) F였다>라는 판단을 내릴 경우, SF였던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긴다.
- 어떤 과거의 사람에 대해 자기-동일화를 한다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 사람과 기억을 통해서 특정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음의 문제이다. 이는 기억의 연속성이 자기-동일화의 관계를 지지함을 의미한다.
- 저자의 대안적 가설에 따르면 자기-동일화에 정도차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기억은 또렷할 수도 있고 흐릿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미래의 자아로의 확장?
위에서는 과거의 사람에 대한 자기-동일화를 다뤘지만, 미래의 사람에 대한 자기-동일화의 문제도 중요하다.
- 과거의 사람에 대한 믿음과 마찬가지로, 만약 나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얻는 방식 중에 오류 면역성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면, 그런 방식이 미래의 사람에 대한 자기-동일화 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 우리가 우리 자신의 미래 행위에 대해 믿음을 획득하는 방식 중, 내가 어떤 것을 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내 미래의 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 판단에는 오류 면역성을 갖는다.
e. g. S10분 후에 강아지를 산책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S'누군가가 10분 후에 강아지를 산책시킬 텐데, 그 사람이 나인가?'라고 묻는 것은 부조리하다.
- 이는 미래의 사람에 대해 자기-동일화를 하는 것과, 그 사람의 미래 행위를 결정을 통해서 안다는 것 사이에 구성적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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