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에, 단테의 『신곡』에서 묘사되는 지옥의 구조는 사실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학자들이 지옥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갈릴레오는 지옥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수학적인 계산을 넣었는데, 나중에
그는 자신의 계산에서 틀린 점을 발견했다. 길이의 증가에 대해, 면적의
증가 비율과 부피의 증가 비율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가상의 공간에 대한 연구가 실제 세계에
대한 연구에 통찰을 준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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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는 원래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그는 수학과 관련된
직업을 얻기 원했지만, 수학은 독학을 했기 때문에 따로 자격 증명을 할 만한 것이 없어서 직업을 갖기가
쉽지 않았다. 이 당시 그는 아버지인 빈센초 갈릴레이와 함께 음악과 현에 대해 실험을 했다. 또한 포물선 형태에서 무게 중심을 찾는 방법을 증명하기도 했는데, 그는
이 결과를 유명한 수학자인 귀도발도 델 몬테에게 보냈다. 귀도발도는 이 정리를 마음에 들어 했고, 갈릴레오를 지원해주었다. 다만 아직 갈릴레오는 경제적으로 완전히
안정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메디치 가의 프란체스코 1세가 죽으면서 상황이 갑자기 바뀌었다. 추기경이었던 프란체스코의 동생 페르디난트가 새로운 대공이 됐고, 추기경
자리는 귀도발도의 동생인 동명이인 페르디난트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더 강한 지원을 받게 되었고, 곧 피사에서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피렌체 아카데미에서 단테의
작품에 나오는 지옥의 구조에 대해 강의하게 되었다.
피렌체 아카데미는 메디치 가의 코시모 1세가 그의 가문을 glorification하기 위해 세워졌다. 왜냐하면 그들의 정통성이
그리 단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렌체 아카데미는 메디치 가의 지배가 정당하며 피렌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메디치 가의 학자로서,
메디치 가와 피렌체의 영광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갈릴레오는 지옥의 구조에 대한 두 모델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는 단테를
인용하면서 세세한 계산과 함께 그 모델들을 설명하고 평가했다. 당시에는 『신곡』의 해설이 많았는데, 갈릴레오가 인용한 두 모델은 Manetti의 것과 Vellutello의 것이었다. Manetti는 피렌체의 건축가였고, Vellutello는 루카 출신이었는데, 피렌체와 루카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던 도시였다. 갈릴레오는 처음에는 두 모델에 비교적 공정한 평가를 내렸지만, 강의를 진행하면서 점점 Vellutello를 깎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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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etti가 묘사한 지옥은 원뿔 모양이었는데, 그 꼭지점이 지구의 중심에 있고, 밑면은 지구의 표면에 있다. 밑면의 중심에는 예루살렘이 위치한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그 부피는 지구의 1/14였다. 또한 지옥의 각 층은 높이의 1/8로 나뉘어 있었다. Vellutello가 묘사한 것은 이보다 훨씬 작았는데, 지구의
중심 주변에 위치해 있고, 그 높이는 지구 반지름의 1/10이므로 Manetti가 묘사한 지옥에 비해 부피는 1/1000밖에 안 되었다. 여기서 갈릴레오는 지옥의 높이가 아닌 부피를 이야기함으로써 훨씬 차이가 크게 들리게 했다. (이러한 수사는 나중에 망원경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이용된다. 망원경에서 실제로 확대되어 보이는 것은 넓이이지만, 그는 부피를 언급함으로써 물체가 훨씬 더 크게 확대되어 보이는 것처럼 묘사한다)
Manetti의 모델에서 지옥은 전반적으로 원뿔형인데, 넓은 테라스들이 기하학적인 질서에 따라 전체 구조에 붙어있었고, 층
사이의 간격은 단순한 척도를 따른다. 그러나 Vellutello의
모델에서는 아랫부분과 윗부분이 다르다. 아래 부분의 몇몇 층은 원통형이고, 위 부분의 층들은 원뿔형이다. 위 부분은 반지름이 연속적으로 증가한다.
갈릴레오는 각 층의 모양이 다른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로 Vellutello를
비판했다. 또한 Vellutello의 도식에서 아랫부분의
기다란 원통형 구덩이는 윗부분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도 지적했다(위 그림에서 점선에
주목). 또한 Vellutello의 모형 윗부분은 비스듬한데, 『신곡』에서 단테는 몇몇 장소에서만 이러한 내리막을 묘사한다는 점도 비판점이었다.
갈릴레오는 Manetti의 모델에 대한 비판에도 답한다. 주된 비판은 Manetti의 모델이 지나치게 거대하여 무너져 내리기
쉽다는 것이었다. 갈릴레오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반박한다. 또한
Manetti의 모델이 『신곡』의 묘사와 어긋나는 듯한 부분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문맥을 잘 살피면 Manetti의 모델과 정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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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갈릴레오는 자신이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Manetti의 모델에 대한 비판에 반박하기 위해 했던 계산은
비례 척도를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길이의 증가에 대해, 면적의
증가 비율과 부피의 증가 비율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 물체의 크기가 10만큼 증가하면 부피(≒무게)는 1000만큼 증가한다. 하지만 그 무게를 견뎌야 하는 면적(≒강도)은 100만큼밖에 증가하지 못한다. 따라서 작은 규모에서 버틸 수 있는
구조가 큰 규모에서도 그대로 버틸 수는 없다. 갈릴레오의
계산에 따르면 Manetti가 묘사한 지옥은 즉시 무너져야 한다.
갈릴레오는 이 강의 내용을 부끄럽게 여긴 모양인지, 그 강의가 그의
경력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 그 강의 내용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딱히 그 오류를 눈치채지 못했고, 갈릴레오는 50년
후 『새로운
두 과학』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그는 큰 배를 만들 때는 작은 배를 만들 때보다 더 많은
종류의 지지대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예로 든다.
이러한 점은 건축에서 상식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지옥 강의를 할 때, 갈릴레오든 그 수강생들이든 이 비례 관계에
대해 아무도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이보다 몇 십 년 전에 지어졌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무게를 간신히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다행히 붕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보베(Beauvais)의 대성당처럼, 큰 성당이 건축 중에 붕괴되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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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강의는 수학 교수직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피렌체 아카데미
측에서는 그 강의가 천문학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갈릴레오는 천문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흥미도 없었다. 그러나 지옥 강의는 그전의 다른 사람들의 지옥 주해와 달리 천문학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그가 천문학의 주제로 언급한 것들, 예를 들면 하늘의 비율, 별의 크기 같은 것들은 천문학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그런 이야기를 그의 진짜 수학 주제를 위한 비유로 사용했다. 비율이나 크기 같은 것들은 그가
지옥에 대해 강의할 때 중심 주제로 다룰 것이었다.
신곡에 대한 해설은 모호한 부분에 대해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하는 것인데, 지옥의
구조에 대한 것은 단테와 베르길리우스의 여행 경로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단테의 생각을 알기 위해
지옥의 구조를 아는 것은 중요했고, 그래서 르네상스기의 사람들은 수학을 여기에 적용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오는 그 전 사람들과 달리 대수적이 아니라 기하학적으로 접근했다.
그는 비율에 대한 기하학 정리부터 시작했다. 이러한 점은 그가 지옥의 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했다. 지옥의 구조에서 각 부분의 모습은 다른 부분의 모습과 연관되어 있다. 또한 그는 숫자를 신중하게 부여하여 대수적 계산을 단순화하였다. 그럼으로써
그가 묘사한 지옥의 구조는 덜 우연적인 듯해 보이고, 좀 더 천문학과 닮았다.
조금 전에 언급했듯이 갈릴레오가 Manetti의 모델을 설명할 때는
각 부분들의 모습 간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옥의 천장과 유사한 구조는 찾을 수 없으므로(천장은 하나이므로), 현실에 존재하는 돔과 유사하게 묘사했다. 그는 기하학을 단테의 영속적인 세계와 연결시켰지만, 천장에서는 현실
세계의 물리학과 접하게 된다. (발제자의 의견으로는, 이
부분은 지옥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대한 수학적인 접근이 현실 세계의 물리학에도 적용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수사적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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