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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11일 월요일

[요약정리] 김기현, 현대 인식론 6장: 토대론과 정합론

1. 토대론과 정합론: 인식정당성의 구조
믿음 중에는 추론적 믿음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는데, 이는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여 정당화되는 믿음, 즉 추론적으로 정당화되는 믿음이다. 이와 같이 믿음들 사이의 상호 관계가 그것들의 정당성에 역할을 한다면, 정당한 믿음들이 연결된 전체 구조는 어떠한지에 대한 것이 토대론과 정합론 논의이다.

1.1. 토대론
믿음들이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소사의 비유)
토대론의 몇 가지 논제들
(1) 정당한 믿음들은 그 정당성을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는 믿음들과 그렇지 않음 믿음들로 구분된다. 정당성을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지 않는 믿음은 기초적 믿음(basic belief), 토대적 믿음(foundational belief), 직접적으로 정당한 믿음(immediately justified belief), 비추론적으로 정당한 믿음(non-inferentially justified belief) 등으로 불린다. 반면 정당성을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는 믿음은 비기초적 믿음, 비토대적 믿음, 비직접적으로 정당한 믿음, 추론적으로 정당한 믿음 등으로 불린다.

(2) 기초적 믿음들이 인식정당성의 원천이며, 다른 믿음들은 정당성을 궁극적으로 기초적 믿음에 의존한다. 

(3) 인식정당성은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토대론은 인식정당성과 관련하여 믿음들 사이의 계층적 질서를 옹호한다. 상층의 믿음들이 하층의 믿음들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제한이 있다. 첫째는 이러한 인식정당성 과정의 일방향성이 사실적 일방향성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로는 서로 상이한 계층에 속한 믿음들 사이에 정당성을 주고받는 일이 일어난다. (예: 일반적 사례들에서 귀납을 통해 일반적 명제에 대한 믿음을 얻고, 그 일반적 믿음을 다시 개별적 사례들에 적용하는 경우.) 상층의 믿음은 하층의 믿음들에 필연적으로 의존하지만, 하층의 믿음들은 상층의 믿음들에 정당성을 필연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즉, (3)은 필연적 일방향성이지, 사실적 일방향성이 아니다.
둘째, 모든 토대론이 반드시 믿음들을 선명히 구획된 계층으로 구분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기초적 믿음을 인정하지만, 비기초적 믿음들 서로 간의 연관성이 그 믿음들의 정당성에 영향을 끼친다는 입장도 있다. 


1-2. 정합론
정합론은 토대론의 각 논제를 부정한다.
토대론의 논제(1) 부정: 믿음들은 상호 간에 잘 짜여져서 연결되어 있을 때 정당하게 된다. 어떤 믿음이 정당화되는지는 그 믿음이 자신이 속한 체계의 정합성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한 체계를 이루는 믿음들 사이에는 그것들이 정당하게 되는 방식에서 차이가 없다.
토대론의 논제 (3) 부정: 정당화는 일방향적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일어난다.
토대론의 논제 (2) 부정: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지 않고 정당화되는 믿음은 없다.
그렇다면 정합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명확히 제시한 바는 없다. 대신 반주르[본문에서는 '봉주르'라고 표기했는데, 발음 표기법을 찾아보니 '반주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는 정합성을 이루는 몇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1) 논리적 일관성: 믿음들의 집합이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다.
(2) 확률적 일관성: 믿음들 사이에 부정적 확률적 연관성이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P가 참이라는 믿음과 P가 참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믿음은 논리적으로 일관적이긴 하지만 확률적으로 일관적이지는 않다. 다만 논리적 일관성과 달리 확률적 일관성은 정도의 문제이다. 정합성의 정도는 확률적 일관성에 비례한다.
(3) 한 믿음 체계의 정합성은 그 요소 믿음들 사이의 추론적 연관성이 존재할 때 증가하고, 그것이 증가하는 정도는 그러한 연관성의 수와 강도에 비례한다. 논리적으로, 확률적으로 일관적이더라도 아무 내용이 없는 믿음들로 이루어진 체계 내에서는 믿음들이 상호 지지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않는다. 
(4) 한 믿음 체계의 정합성은 추론적 관계를 통하여 상호간 상대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하부 체계들의 정도에 반비례하여 감소한다.
(5) 한 믿음 체계 내에서 설명되지 않는 이례항(anomaly)의 존재에 비례하여 그 체계의 정합성은 감소한다.


2. 토대론과 정합론: 인식정당성의 결과 또는 조건
토대론이 옹호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개별 믿음들이 각자 정당화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이다. 반면 정합론이 옹호하는 구조는 개별 믿음들이 정당하게 되기 위한 선행적 조건이다. 즉, 정합론에서 인식정당성은 개별 믿음이 아니라 체계에서 유래한다. 

3. 인식정당성의 후퇴
인식정당성의 후퇴 현상은 토대론을 옹호한다. 한 믿음이 다른 믿음에 근거하여 정당화된다면, 근거가 되는 그 믿음도 정당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근거가 되는 그 믿음도 또 다른 정당한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인식정당성의 후퇴가 일어난다. 인식정당성의 후퇴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귀결 중 하나로 이어진다.

a. 무한 후퇴
b. 후퇴가 인식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어떤 믿음에서 끝난다.
c. 후퇴가 진행되다가 후퇴가 시작된 믿음으로 되돌아온다.
d. 다른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정당화되는 믿음에서 후퇴가 끝난다.

a가 옳다면 회의론으로 이어진다. 모든 추론적 믿음은 정당화될 수 없다.
b가 옳아도 회의론으로 이어진다. 후퇴가 인식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믿음에서 끝난다면, 그 믿음에 의해 정당화되는 믿음들의 연쇄가 모두 정당하지 않게 된다.
c가 옳아도 회의론으로 이어진다. 정당화가 순환적이게 되는데, 이 경우는 a의 특수한 경우로도, b의 특수한 경우로도 볼 수 있다.
d가 옳다면 회의론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토대론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논증을 통해 회의론이 아닌 토대론을 옹호하고자 한다면, 후퇴를 중단시키는 기초적 믿음들이 실제로 존재하며, 이러한 기초적 믿음들이 많은 추론적 믿음들을 정당화할 수 있음을 보여야 한다.

4. 토대론의 유형들
4.1. 자체 정당성과 명제의 확실성
많은 전통적 토대론자들에 따르면 기초적 믿음은 자체 정당성(self-justification)을 갖는 믿음이다. 이는 그 믿음이 믿어진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당화됨, 즉 그 믿음의 정당성이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음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적 믿음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기초적 믿음에 대한 규정보다 훨씬 강하다. 일반적인 규정에 따르면, 한 믿음이 기초적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그 정당성을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지 않을 것만이 요구된다(사실이나 감각 경험 등에 의한 정당화를 허용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믿음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음을 뜻한다.  
전통적인 토대론자들은 자신들의 토대론을 규범적 이론으로 이해한다. 여기에서는 확실한 명제를 내용으로 하는 믿음이 초석이 된다. 이러한 믿음은 자체 정당성을 갖는다. 명제가 확실성을 갖고 있어 오류 가능성이 없다면, 그 명제를 믿는 것 자체로 정당화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코기토 명제가 기초적 믿음일 수 있는 이유로 확실성, 의심불가능성, 명석판명성을 들었다. 의심불가능성(주관적 확실성)은 한 사람이 그 명제를 의심할 수 있는지 여부의 주관적 심리 태도와 관련된 것이고, 확실성(객관적 확실성)은 그 명제가 객관적으로 참인지 여부와 관련된 것으로 인식 주관의 태도와는 무관하다. 

(I) 의심 불가능성을 기초적 믿음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토대론: 만약 S가 P를 믿고, P가 S에게 의심 불가능하면, S가 P를 믿는 것은 정당하다.
그러나 누가 어떤 명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만으로 그 믿음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F) 객관적 확실성을 기초적 믿음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토대론: 만약 S가 P를 믿고 P가 필연적 참이라면,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하다.
문제점: 필연적 참인 명제를 믿기는 믿는데 정당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반례가 된다. 예를 들어 기하학의 어떤 정리를 믿는데, 올바른 근거 없이 믿는 경우.


4.2. 경험에 주어진 것과 내성적 확실성
(I), (F)의 문제는 기초적 믿음의 합당한 기준이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험적 믿음의 인식정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둘 다 우연적 참일 수밖에 없는 경험적 사실들에 대한 믿음들을 인식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 
경험주의 전통에서는 경험의 영역에서 확실성의 영역을 찾아 지식의 체계를 토대론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감각 소여(sense data), 경험에 주어진 것(the empirically given)이라고 불리는 심적 상태가 그러한 것이다. C. I. 루이스는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믿음을 기초적 믿음로 보고 그로부터 다른 믿음들의 정당성을 도출하고자 한다. 
자신의 심적 상태를 파악하는 능력이 내성이므로, 이들은 내성적 믿음을 기초적 믿음이라고 간주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내성적 믿음은 자체-정당성을 갖지는 않는다. 경험에 주어진 것(명제적인 것이 아니므로 아직 믿음은 아님)에 의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성적 믿음은 다른 믿음에 정당성을 의존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기초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내성적 믿음이 확실성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내성은 경험에 주어진 것을 아무런 중간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으로 이해된다. 

정합론자들의 경험주의 비판: 믿음이 감각 경험에 의해 정당화되려면, 왜 그런 경험이 주어졌을 때 그 믿음을 참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 맥락에서는, 내성이 왜 믿을 만한 것인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 내성의 신빙성에 대한 또 다른 믿음의 정당성에 의존한다.
인식정당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어떤 믿음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왜 참일 개연성이 높은가에 대한 별도의 믿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다른 믿음에 의존하지 않는 기초 믿음을 부정한다. 위의 경험주의 비판은 이를 내성에 적용한 것이다. 물론 전통적 견해에 대한 비판점이 여기에 다시 적용될 수 있다(무한 후퇴).

4.3. 온건한 토대론
경험적 지식 기반 토대론의 큰 문제는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믿음이 매우 드물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인식 주관은 대부분의 경우 세계에 대한 믿음을 만들지, 자신의 감각 경험에 대한 믿음을 만들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보면 보통 '나무가 있다'는믿음을 만들지, '나에게 나무같아 보이는 감각 경험이 있다'는 믿음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  
경험적 지식 기반 토대론자들은 감각 경험이 감각 경험 자체에 대한 믿음의 매개 없이 외적 사태에 대한 지각적 믿음을 직접 정당하게 한다고 대응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온건한 토대론 혹은 직접적 실재론이라고 불리며, 내성적 믿음이 아닌 지각적 믿음 강조)
그렇다면 경험적 지식 기반 토대론자들은 왜 흔치 않은 믿음(감각 경험에 대한 믿음 )을 기초적 믿음으로 간주하고자 했을까? 경험적 지식 기반 토대론자들은 토대론을 규범적으로 이해한다. 이들은 인식론이 해야 할 일은 확실성에 토대를 둔 기초적 믿음을 통해 지식 체계를 견고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확실성을 갖춘 감각 경험에 대한 믿음만이 기초적 믿음으로 도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입장이 규범적인 입장이라고 해도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인식정당성에 대한 전통적 견해가 갖는 문제점을 그대로 갖고 있다. 어떻게 주어진 경험이 외적 상태에 대한 믿음을 뒷받침하는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어진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믿음 사이의 정당성 관계에 대한 상위 믿음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무한 후퇴로 빠진다. 게다가, 감각 경험에 대한 믿음이 상위 믿음에 정당성을 의존하게 되므로 더 이상 기초적 믿음이 될 수 없다.  
둘째, 감각 경험에 대한 내성적 믿음은 확실하지 않다. 경험에 주어진 것 그 자체를 포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심리학에 따르면 내성적 보고는 신빙성이 없다. 
따라서, 경험적 지식에 대한 토대론이 옳다면, 그것은 직접적 실재론(온건한 토대론)이어야 한다.

5. 토대론에 대한 도전: 경험의 이론의존성
경험적 지식에 대한 토대론 일반(즉, 직접적 실재론까지 포함)에 대한 비판이 있다. 경험에 주어진 것은 그 자체로서는 어떤 믿음도 정당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험에 주어진 것이 믿음을 정당하게 하는 역할을 하려면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인식 주관에 의해 파악되어야 한다. 경험에 주어진 것도 그것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경험에 주어진 것 자체는 내용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정당화는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이해를 매개로 하여 정당화된다. 이러한 이해는 서술적 내용을 갖는 심적 상태로서, 믿음과 다를 바 없다. 인지적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이 심적 상태가 정당한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합당하다. 따라서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믿음이 이런 이해에 의해 정당하게 된다고 한다면, 이 이해가 먼저 정당해야 한다. 결국,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믿음은 다른 믿음에 그 정당성을 의존하므로 기초적 믿음이 될 수 없다. 
경험에 주어진 것은 우리가 어떤 배경 지식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경험적 믿음의 정당성 -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해석의 정당성 - 배경적 믿음들의 정당성'의 연쇄). 이는 인식정당성에 대한 정합론으로 귀결된다. 
경험에 주어진 것에 대한 해석 문제는 과학철학에서 논의되는 경험의 이론의존성, 형이상학에서 논의되는 세계의 상대성 등의 문제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6. 정합론의 유형들
6.1. 긍정적 정합론과 부정적 정합론
한 믿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을 위한 긍정적인 근거가 있고, 부정적인 근거(논박자)가 없어야 한다. 이 두가지를 모두 고려하는 것, 즉 긍적적 근거와 부정적 근거의 존재 여부를 모두 고려하는 것이 긍정적 정합론이다. 한편 부정적 근거의 존재 여부만 고려하는 부정적 정합론도 있다.
긍정적 정합론이 주류이며, 부정적 정합론을 옹호하는 학자는 하만 정도밖에 없다.
부정적 정합론은 다음과 같은 논의에 근거한다. 먼저, 믿음의 최초 형성(이 명제를 이제 처음으로 믿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믿음의 유지 및 수정(이미 믿고 있는 이 명제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구분된다. 부정적 정합론은 믿음의 유지 및 수정에 대한 질문에 초점을 맞춘다. 만약 믿음 P가 배제되었을 때, P를 전제로 하여 정당화되었던 다른 믿음 Q는 어떻게 되는가? 긍정적 정합론에 따르면 Q도 폐기해야 하지만, 인식 주관은 Q가 P에서 나왔다는 점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따라서 P가 폐기됐다고 해서 Q도 그래야 한다는 규범은 따를 수 없다. 

6.2.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
정합론은 인식정당성에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 근거 또는 논박자의 범위를 규정하는 방식에 따라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으로 구분된다.
선형적 정합론: 한 믿음이 그 믿음의 주체에 속한 일정한 범위의 믿음들을 고려할 때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면, 그 믿음은 체계와 정합적이다.
전체적 정합론: 한 믿음의 정당성을 판단하려면 그것이 속한 믿음 체계를 이루는 모든 믿음들을 전제로 고려해야 한다.
긍정/부정, 선형/전체를 조합하면 네 가지 유형의 정합론이 있을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7. 인식정당성의 후퇴 재고
인식정당성의 후퇴를 통한 정합론 비판이 과연 효과적인가? 논박자만을 고려하여 인식정당성을 설명하는 부정적 정합론에는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는다. 또, 후퇴 문제는 믿음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증거 사이의 관계가 선형적이고 일방향적임을 전제한다. 따라서 전체적 정합론에서는 인식정당성의 후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문제가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발생하더라도 전체론적 구조 속에서 해소). 
후퇴가 문제가 되는 정합론은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의존한다. 한 믿음의 정당성이 다른 여러 믿음을 전제로 하여 가능하다면, 후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이런 대응은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과 전체적 긍정적 정합론 사이의 구분이 선명하지는 않음을 시사한다.
정합론에 따르면 모든 믿음은 그에 근접한 믿음들에 의해 정당하게 되고, 체계 내의 어떤 두 믿음들도 최소한 간접적으로 정당화 관계로 연결되며, 한 믿음의 정당성은 궁극적으로 잘 짜여진 체계 내에 위치함으로써 정당화된다. 따라서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은 특정 믿음의 정당화가 진행되는 최초 단계에 주목하고 있을 뿐, 전반적인 구조로는 전체적 긍정적 정합론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8. 정합론에 대한 도전
8.1. 정당성의 상이한 체계들 또는 세계로부터의 괴리
비판1: 상이한 믿음들로 이루어진 전혀 다른 체계가 같은 정합성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합적인 체계의 믿음들을 모두 부정하여도 똑같은 정도로 정합적인 체계가 된다. 그렇다면 두 모순된 믿음들이 서로 다른 정합적 체계에 속함으로써 동시에 정당화된다.
비판2: 정합론에 의해 인식적으로 정당화된 믿음들이 세계와 완전히 고립될 수 있다. 세계와 전혀 상관 없는 정합적 믿음들.

두 비판의 공통점은 인식적으로 정당한 믿음은 참일 개연성이 높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문제가 있다. 인식정당성과 진리의 관계가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전능한 기만자에 의해 참인 믿음을 못 얻게 되는 경우여도,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 경험을 최대한 열심히 반성하여 어떤 믿음을 만드는 사람은 인식적으로 정당한 작업을 한 것이다. 

8.2. 감각 경험으로부터의 괴리
감각 경험을 체계적으로 무시하여 일반인들과 완전히 상이한 방식으로 지각적 믿음을 형성하는 사람을 떠올려 보자. 그런데 이런 지각적 믿음들이 매우 정합적인 체계를 구성하는 경우는 이런 경우는 데카르트적인 전능한 기만자를 고려하는 것에 의해서도 구제될 수 없다. 전능한 기만자에 의해 기만당하는 경우도 감각 경험은 주어지는데, 이 경우는 감각 경험을 체계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이다. 앞선 비판과의 차이는, 정합론을 세계와의 괴리에 의거해 비판하지 않고 감각 경험과의 괴리에 의거해 비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때문에 정합론을 완전히 기각할 필요는 없다. 이 비판이 보여주는 것은 한 믿음 체계가 정당한 믿음들을 산출하려면 감각 경험의 입력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일 뿐이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수정된 정합론을 제시할 수 있다: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속한 체계의 다른 믿음들과 정합적이어야 하며, 그 체계는 감각 경험의 입력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토대론자의 입장에서 더 강한 비판을 제기할 수 있다. 믿음 체계가 감각 경험에서 일탈하지 않으려면, 감각 경험과 밀접히 연관된 믿음들(지각적 믿음들)이 감각 경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믿음들(이론적 믿음들)에 의해 수정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각적 믿음의 인식정당성은 이론적 믿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감각 경험에 의존해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온건한 토대론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정합론자의 입장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감각 경험의 이론 의존성을 고려할 때 정합성이 인식정당성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론의존성을 고려하면, 지각적 믿음은 기초적 믿음이 아니다. 따라서 감각 경험이 인식정당성의 중요한 요소이더라도, 믿음들의 인식정당성은 궁극적으로는 믿음들 사이의 정합성에 의해 결정된다.     

9. 토대론과 정합론의 진정한 싸움터
감각 경험의 배경 지식 의존성 여부가 토대론과 정합론이 최종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즉, 토대론과 정합론 논쟁은 인식정당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경험의 이론 의존성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경험의 이론 의존성 논쟁은 경험 과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제기된다.
예: 포더(선 두 개 길이 같다는 점을 알아도 계속 다르게 보임 - 이론 의존성 x) vs. 처칠랜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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