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경련(tics)과 손짓(waves)
행위자에 의한 통제(control)을 수반하는 의도적 행위(action)와 통제되지 않은 행동(behavior)과 비교하는 것은 되는 의도적 행위의 본성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다. 예를 들어, 경련에 의해 손이 들리는 것과, 내가 의도적으로 손을 드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은 12가지 기준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가로선은 저자의 분류 - 분류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음.]
1) 능동/수동
행위자는 손을 들 때 능동적이지만, 손이 들릴 때는 수동적이다. 이 구분은 옳긴 하지만 의도적 행위를 가려내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애벌레, 세탁기, 염산 등은 능동적이지만 합리적이고 practical한 행위자가 아니다.
2) 선택
행위자는 손을 들기를 선택하지만, 손이 들리기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많은 철학자들은 어떤 행위자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그 행위자가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어떤 관점에서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더 기본적인 요소로 나눌 수 없다고 본다. 다른 관점에서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몇몇 동기 부여 상태, 예를 들면 욕구, practical 숙고와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 결정을 실행할 때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과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3) 자발성
손을 드는 것은 자발적이지만, 손이 들리는 것은 비자발적(non-voluntary)이거나 본의 아닌(involuntary) 것이다. 비자발적이란 단지 행위자의 의지가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만을 뜻하지만, 본의 아니라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실패한다는 것을 뜻한다.
4) 목적
손을 드는 것은 목적이 있지만, 손이 들리는 것은 목적이 없다. 만약 손이 들리는 것에 목적이 있더라도[예를 들면 경련이 어떤 생물학적 목적 때문에 일어나는 것] 그 목적은 행위자가 부여한 것이 아니다. 그에 반해 손을 드는 것은 손을 드는 것 자체 말고도 다른 목적[다른 사람에게 인사하기 등]이 부여될 수 있다. 몇몇 철학자들은 의도적 행위의 목적론적 성격을 의도적 행위를 정의하는 특징이라고 보고, 목적을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 불가능하다고 본다.
5) 이유
행위자는 손을 들 때 이유가 있지만, 손이 들릴 때는 이유가 없다. 목적이 행위자가 행위를 끝내거나 목표를 부여하는 능력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유는 행위자의 합리적 능력에 초점을 맞춘다.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를 이유에 의거해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유란 무엇인가, 이유와 의도적 행위가 어떤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6) 시도
손을 들 때 행위자는 무엇인가를 시도하는 것이지만, 손이 들릴 때는 아무것도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그 행위의 목적이나 이유와는 독립적인 것 같다. 몇몇 학자들은 시도가 더 기본적인 요소로 환원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7) 특정 종류의 왜-질문에 대한 적용
어떤 행위자가 손을 들었을 때, 그 행위자에게 '왜 손을 들었나요?'라고 묻는 것은 부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경련으로 손이 들리는 사람에게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앤스콤은 의도적 행위의 두드러진 특징은 거기에 특정 종류의 왜-질문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보았다.
8) 욕구·의도
행위자는 손을 들 때 무언가를 원하거나 의도하지만, 손이 들릴 때는 그렇지 않다. 많은 철학자들은 의도적 행위를 다른 움직임들과 구분한다. 이러한 구분은 심리적 상태와 그것들이 의도적인 행위를 만들어내는 인과적 역할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의도적 행위를 시도하는 것은 어떤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의도를 실현하는 일이다. 또한, 왜-질문의 적용은 그 대답에 그 행위와 관련된 욕구나 의도를 관련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9) 통제
손을 드는 것은 행위자가 통제하지만, 손이 들릴 때는 그렇지 않다. 통제는 합리적인 practical 행위자성의 핵심이며 의도적 행위를 정의하는 특징이다.
10) 명시지(knowing what)
행위자는 손을 들 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내면으로부터' 안다. 손이 들릴 때는 고유 감각(proprioception)이나 손의 궤적을 눈으로 봄으로써 안다. 합리적이고 practical한 행위자는 인식적 행위자(epistemic agent)이기도 하다. 인식적 행위자는 믿음을 형성할 수 있고 대상들을 알 수 있다. 의도적 행위는 그 행위자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종류의 인식적 관계에 의해 구분될 수 있다. 행위자는 일인칭적 접근(first-person access)을 통해 자신이 의도적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 행위자를 관찰하는 다른 사람도 그 행위자가 의도적 행위를 하는지 알 수는 있지만, 그것은 일인칭적 접근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에 의해서이다.
11) 암묵지(knowing how)
손을 들 때 행위자는 어떻게 손을 드는지 알고 그 지식에 의거해 손을 들지만, 손이 들릴 때는 행위자가 어떻게 손이 들리는지를 아는 것과 상관 없이 손이 들린다. 어떤 행위를 하는 법을 모르면서 그 행위를 의도적으로 할 수는 없다.
12) 자기-평가(self-evaluation)
손을 들 때 행위자는 성공하거나 실패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평가할 수 있다. 손이 들릴 때는 이런 식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의도적 행위는 행위자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을 완료했는지 자기-평가를 할 수 있음과 관련된다.
행위철학자들은 위의 기준들을 이용해 의도적 행위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나 모든 철학자들이 이런 접근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학자들은 의도적 행위를 원초적인 개념으로 보고 다른 개념들이 의도적 행위 개념을 통해 분석되어야 한다고 본다.
1.2. 의도치 않은 행위(unintentional)와 의도적 행위
의도치 않은 행위란, 의도적 행위에 의존하지만 그 자체로는 의도적 행위가 아닌 행위를 뜻한다. 예를 들어 창문을 열려다가 창턱에 있는 램프를 깬 것은 의도치 않은 행위이다. 누가 램프를 깼느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했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내가 그 일에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램프가 깨지는 데에 내 행위만이 중요한 인과적 역할을 했다는 뜻도 아니다. 예를 들어 창문을 열면 24시간 뒤에 램프를 깨는 이상한 장치를 누가 설치해 놨는데 내가 그것을 모르고 창문을 열었다고 하자. 나중에 램프가 깨진 것은 내 행위뿐만 아니라 그 장치도 중요한 인과적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의도치 않은 행위는 도덕적 책임과는 다른 무언가, 그리고 중요한 인과적 역할 이상의 무언가와 연관되어 있다. 다만 여기서 이 문제를 더 다루지는 않고, 5장에서 다룰 것이다.
한편으로 행위의 개별화 문제가 존재한다. 즉, 어디까지를 하나의 행위로 셀 것인가, 어떤 행위와 어떤 행위를 같거나 다른 행위로 취급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데이빗슨 등의 철학자는 한 행위에 여러 가지 기술(description)이 있다고 보았다. 같은 행위가 어떤 기술 하에서는 의도적 행위가 되고, 다른 기술 하에서는 의도치 않은 행위가 된다.
다른 관점은 행위를 좀 더 세심하게 개별화한다. 골드먼은 행위가 특정 시간에 어떤 대상에 의해 속성이 예화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위의 예에서 '창문을 엶'과 '램프를 깨뜨림'은 나에 의해 예화되는 서로 다른 속성들이다. 그에 따르면 내가 창문을 열 때 사실 여러 행위를 하는 것인데, 그 중 몇몇은 의도적인 것이고 몇몇은 의도치 않은 것이다.
Stout는 기존의 행위철학이 인과를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해하는 데에 의존하며,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인과를 메커니스틱(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용어로)하게 이해하고 행위철학을 이끌어 내면 행위의 복잡한 면을 더 잘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이 책에서는 데이빗슨, Stout 등의 관점을 취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행위자가 행위-유형을 개별화한다는, 골드먼과 유사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이상학적 면에는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다른 형이상학을 취하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내용을 이야기할 것이다.
읽을거리
ㅇ 명시지
Anscombe(1957/2000)
Velleman(1989), Setiya(2007) - 의도는 행위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적 믿음의 한 종류라는 견해.
Paul(2009)
Gibbons(2001) - 의도적 행위에서 지식의 필요성
ㅇ 암묵지
Ryle(1946) - 암묵지에 대한 anti-intellectualist. 암묵지란 명제지[명시지랑 같은 것?]와는 구별되는 종류의 지식. 최근의 논쟁은 Stanley (2011)
Bengson and Moffatt(2011)에 실린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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