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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9일 목요일

[요약정리] Bowler, P. (1984), "The Evolutionary Synthesis" in Evolution: The History of an Idea (발췌)

[다윈 관련 앤솔로지인 Philip Appleman (ed.), Darwin, W.W. Norton & Company에 일부 생략되어 실린 버전을 요약한 것이다.]



[근대적 종합 전의 상황]
20세기 초반에 자연선택에 대한 다윈의 이론은 별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현장 박물학자들(naturalists)은 다윈처럼 진화에서 지리적 요인을 강조했지만, 적응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라마르크주의 등 다른 입장을 취했다. 고생물학자들은 진화가 선형적 경로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실험 생물학자들은 정반대였는데, 유전학을 통해 라마르크주의를 거부했지만, 돌연변이에 의한 새로운 형질의 출현과 관련하여 적응과 자연선택이 역할을 한다는 입장도 거부했다. 
그 후 1920년대에 들어서 생물학의 여러 갈래들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는데, 여기에 다윈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따르면 멘델 유전학을 통해 얻어진, 유전에 대한 더 정교한 이해가 개체의 다양한 변이들을 포함하고 있는 개체군(population)에 적용되어야 한다. 또한 자연 선택은 유전자의 상대 빈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로 1940년 경 근대적 종합(The Modern Synthesis)가 이루어졌다.
  
[개체군 유전학과 다윈주의의 관계]
사실 초기 개체군 유전학은 다윈주의의 여러 중요한 요인들, 예를 들면 지리적 격리(geographical isolation)를 무시했다. 1920년 이전의 유전학자들은 돌연변이가 진화에 새로운 특성(characteristics)을 도입하는 유일한 원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유전자의 적응적 가치 차이가 그 유전자들이 야생(wild) 개체군에서 퍼지는 정도를 조절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험 생물학자들은 야생 상태의 생물에게 영향을 주는 힘을 너무 무시했고, 인공적인 환경에서 연구될 수 있는 과정들(e. g. 돌연변이)에 초점을 맞추면서 진화에서 적응의 역할을 과소평가했다.
그러나 개체군 유전학이 점차 발전하면서 적응적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 선택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개체군의 유전 구조가 처음에 상상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 다윈주의의 부활에 있어 중요한 계기였다. 오직 그럴 때만 적응적 이점에 대한 선택이 개체군 내의 어떤 유전자의 빈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R. A. Fisher, J. B. S. Haldane, Sewall Wright 세 명이 이런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유전학 모형의 수학적 정교함을 위해 Fisher와 Haldane은 "콩주머니" 접근을 사용했다. 콩주머니 접근은 선택이 개별 유전자에 작용되며, 각각의 유전자는 일정한 적응적 가치를 갖는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진화는 개체군의 유전자 풀(gene pool)에서 유전자가 더해지거나 빠지는 것이었다. 한편 Wright의 접근은 작고 근친교배하는 개체군에서 유전자들 간의 상호작용이 추가적인 변이 가능성(variability)의 원천임을 강조했다. 

(중략)

[멘델의 법칙과 연속적 변이의 관계]
1902년에 Udny Yule은 멘델의 법칙이 변이에 대한 생물측정학적 접근과 반드시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멘델주의자들은 불연속적 변이를 강조했는데, Yule은 연속적으로 변하는 특성들도 멘델의 법칙을 따르는 요인의 대물림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보였다. 같은 특성에 대해 한 쌍 이상의 유전적 요소들이 관여하면 연속적 특성도 멘델의 법칙에 따라 설명될 수 있다. 
자연선택에 반대하는 유명한 논증 중 하나는 Fleeming Jenkins의 "swamping argument"였는데, 멘델 식의 대물림 개념을 받아들이면 이 논증은 기각된다. swamping argument에 따르면 자연선택이 일어나면 새로운 특성이 나타나더라도 그 특성은 세대를 거치며 자연히 사라진다. 왜냐하면 특성들은 서로 섞여서(blending) 일정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멘델 식 대물림 개념에서는 유전의 효과가 섞이지 않는다. 따라서 유전의 효과는 변하지 않은 채 여러 세대를 거쳐 퍼질 수 있다.

(중략)

[개체군 내 변이들의 중요성]
유전적 특성들은 개체군 내에서 계속되는 돌연변이에 의해 생성된다. 심지어 그 돌연변이들에 이점이 없다고 하더라도 작은 빈도로 계속 생성된다. 그리고 종(species)은 환경 조건이 바뀌었을 때도 선택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변이 가능성을 확보한다. 이와 같이 다양한 유전적 변이가 존재한다는 점은 연속적 변이에 대해 멘델 식으로 설명을 할 때 필요하며, 이익이 되는 유전자의 빈도를 바꿀 힘을 선택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이는 데에도 필요하다. 유전 단위들은 섞이지 않고 보존되므로, 개체군 내의 변이는 유지된다. 

[Fisher와 Haldane의 수학적 모형]
Fisher는 잘 작동되는 수학적 모형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정을 했다. 그의 모형에서 선택은 변이 가능성이 최대화된 큰 개체군에 일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상정됐다. 이 모형은 단일 유전자들에 작동하기 때문에 여전히 콩주머니 접근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모형에 따르면 선택이 선호되지 않는 유전자의 빈도를 낮출 수 있지만, 만약 그 유전자가 열성이라면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또한 Fisher는 이형접합이 동형접합보다 적합할 때, 선택이 두 allele들 사이의 균형을 유지시킨다는 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돌연변이는 해로워 선택에 의해 제거되지만, 그래도 돌연변이는 고정적인 비율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빈도의 균형이 맞춰진다. 이런 이유로 Fisher는 큰 개체군이 변이 가능성을 유지한다고 보았다.
Haldane도 수학적 모형을 단순화하기 위해 몇 가지 가정을 했다. 그가 상정한 개체군에서 짝짓기는 무작위로 일어나고, 개체군의 크기는 무한하며, 멘델 식의 우성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분리의 법칙이 성립한다. 여기서도 강조점은 단일 유전자에 적용되는 선택이었지만, Haldane은 그 과정이 Fisher가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일어남을 실질적인 예들을 통해 보였다. 맨체스터 공업지대 나방의 공업 암화(industrial melanism)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Fisher와 Haldane은 큰 개체군에서 상당 범위의 변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가해지는 선택에 대한 모형을 세웠기 때문에, 그들의 이론은 연속적이며 분화하지 않는 진화에 대한 문제만 다룰 수 있었다. 그들은 개체군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 종 분화에 대한 현장 박물학자들의 관심을 무시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격리된 개체군이 진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게다가 그들은 각 유전자를 특정 적응적 가치를 갖는 개별 단위로 취급하는 콩주머니 접근을 취했는데, 이 접근은 유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 돌연변이에 의해 새로운 유전자가 나타나지 않아도 유전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이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는데 이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유전적 변이에는 확고한 한계가 있다는 Johannsen의 주장을 회피했다.

(중략)

The Modern Synthesis
개체군 유전학에서 채택된 복잡한 수학을 따라갈 수 있는 현장 박물학자들은 소수였다. 종 간 그리고 종 내의 지리적 변이를 다루던 박물학자들 사이에서도, [개체군 유전학자들과 동시에] 개체군적 사고가 생겼다. 그들은 변이의 복잡한 패턴이, 종의 기본 형태는 지역적 조건에 의해 피상적으로만 변한다는, 종에 대한 유형학적(typological) 관점과 조화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각 지역적 변종(variety) 또는 아종(subspecies)은 이웃 집단과 생식적으로 격리된 교배 개체군으로 간주되어야 했다. 박물학자들은 한때 동질적이었던 개체군을 가르는 데에 지리적 격리가 중요하며, 그 후 지리적 장벽이 사라져도 생식적 격리가 유지된다고 보았다. 그들은 지리적 격리에 의해 각 아종이 노출된 서로 다른 환경이 각 아종의 독특한unique 특성을 만든다고 보았다. 이런 개체군적 사고가 수학적 개체군 유전학과 결합했을 때 근대적 종합의 윤곽이 나타났다. Fisher와 Haldane의 테크닉은 박물학자들의 지리학적 통찰에 적용되기 어려웠지만, 대부분의 생물학자가 선택이 적응적 진화의 강력한 메커니즘임을 알아차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중략)

[종합에 기여한 학자들]
Julian Huxley는 자연사 전통에서 동물 행동에 관해 연구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배아의 성장에도 관심이 있었고 유전학의 최신 발전도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1940년에 발간된 The New Systematics라는 책을 편집했는데, 이 책은 생물학의 여러 측면의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었다. Huxley 자신의 포괄적인 연구Evolution: the Modern Synthesis라는 책으로 1942년에 발간되었다.
Ernst Mayr는 Bernhard Rensch의 영향을 받았는데, Rensch는 지리적 변이와 기후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입장을 되살린 사람이었다. Mayr는 수학적 유전학의 성과를 접하지 않았는데도, 그와 독립적으로 자신의 현장 연구로부터 종에 대한 개체군적 사고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의 1942년 저작인 Systema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는 종 분화에서 지리적 요인의 역할을 강조하였으며 근대적 종합을 정초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Theodosius Dobzhansky는 러시아 학파에서 개체군적 접근 방식을 익혔고, 그래서 현장 박물학자들에게 유전학의 어떤 내용이 필요한지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었다. 그의 1937년 저작인 Genetics and the Origin of Species현장 박물학과 유전학의 간극을 극복하게 해주었다. 그는 Wright와 함께 자연적 개체군의 유전학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다. 이 연구의 한 목적은 선택이 단지 변화의 메커니즘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게 하는 메커니즘(balancing mechanisms, e. g. 이형접합이 더 적합하기 때문에 두 가지 allele이 공존하는 경우)를 통해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 동적 평형이 자연계에 널리 퍼져있다는 것은 현대적 다윈주의에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것은 개체군이 실제로 유전적 변이를 상당히 많이 가질 수 있음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격리 메커니즘'(isolating mechanism)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이는 두 동족의(related) 개체군이 같은 지역을 점유할 때, 상호 교배를 막는 비유전적 특성(e. g. 행동의 차이)을 가리킨다. 근대적 종합의 창시자들은 종 분화의 초기 단계에서 지리적 격리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그러한 지리적 장벽이 없어졌을 때도 격리 메커니즘이 상호 교배를 막게 된다. 이는 아종들이 분리된 채로 남게 하고 계속된 선택을 촉진한다. 이로써 새로운 다윈주의는 종 분화가 특별한 유전적 메커니즘을 요구하지 않으며, 지리적 격리가 주어지면, 자연 선택만으로 종 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George Gaylord Simpson에 의해 진화적 종합이 고생물학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화석 자료에 나타난 대진화는 소진화 과정의 결과가 축적되어 일어났다는 점을 보이고자 했다. 이 주장을 증명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고생물학의 증거가 근대적 종합 이론과 일관적이라는 점은 보일 수 있었다. 그는 진화에서 중요한 변화들이 불규칙적이고 방향성 없는 방식으로 일어났음을 보이기 위해 정량적 분석을 이용했고, 선형적 진화의 증거가 미약함을 보였다. 예를 들어 말의 진화는 선형적이지 않고, 불규칙한 나무 형태로 일어났다. 그는 화석의 불연속이 단지 화석이 충분하지 않아서 생기는게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 상당한 수준의 변화가 적응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일어났다고 보았는데, 이 점을 설명할 때 Wright의 유전적 부동 개념을 동원했다.

(중략)

[일반적 세계관으로서의 다윈주의]
Huxley와 Simpson은 새로운 다윈주의를 자연, 삶의 목적에 대한 일반적 세계관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그들의 작업은 과학을 지식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하는 실증주의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도덕성이 종교 등 초월적인 원천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 나타난다고 보았다. 또한 그들은 과학과 흔히 결부되는 기계론적 세계상에서 탈피하여, 다윈주의의 창조적이고 낙관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회를 인간 생물학에 의거해 설명하는 것이 더이상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다윈주의적 진화는 목적론적 과정이 아니며, 인간의 출현은 예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Huxley는 진화를 진보로 보았는데, 진보의 정도는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으로 측정될 수 있다고 보았다. Simpson은 진화를 진보로 보는 관점에 Huxely보다는 좀더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Simpson도 생명에는 주변 환경에 대한 더 큰 앎(awareness)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고, 그런 점에서 인류를 생명의 정점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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